‘오너 없는 기업’ 유한양행이 회장·부회장 직제를 부활시켰다. 고(故) 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이 회사에서 회장‧부회장 직제가 부활한 건 28년 만이다.
유한양행은 15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회장과 부회장직이 추가하고 이사 중 회장과 부회장을 선임하는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약 95%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유한양행에서 회장에 오른 사람은 유일한 박사와 연만희 고문 둘뿐이다. 연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1996년 이후에는 회장직에 오른 이는 없었다. 2009년부턴 아예 회장을 뽑을 근거가 없었다. 당시 주주총회에서 회장직을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정관에서 삭제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택한 까닭에 사외이사 수가 사내이사보다 많은 이사회를 중심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진행해왔다.
창업자 가족조차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유한양행의 회장 직제 부활은 재계의 큰 관심을 받은 이슈였다. 특정인이 회장직에 오르려는 조치라는 반발이 일각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일부 직원이 본사 앞에서 정관 변경에 반대하는 트럭 시위를 벌였다. 주총에 참석한 한 주주는 “유한양행과 관계사 임원 중에서 회장‧부회장 직제 신설이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강조한 정신과 맞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일한 박사의 손녀이자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도 직제 변경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거주 중인 미국에서 귀국해 이날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그는 주주총회 참석 전 취재진과 만나 "할아버지의 정신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이 유한양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그저 회사와 할아버지의 정신을 관찰하고 지지하기 위해 여기 왔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직제 변경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
그는 “다른 회사처럼 언젠가 큰 회사로 가야 한다. 그것에 맞춰서 회장‧부회장 직제를 신설하는 것”이라며 “회장을 하라고 해도 할 사람 없을 것이다. 한다는 사람이 있어도 이사회에서 분명히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장이 언제 생기는 지에 대해선 "정해진 바 없으며 모른다"고 답했다.
회장직에 오를 인물로 거론됐던 이정희 이사회 의장은 회장을 할 생각이 추후도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날 주총장을 빠져나가며 "저는 (회장) 안 하겠다는 말씀만 드리겠다"고 했다. 9년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일각에서 회사의 막후 경영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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